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32)
조선역사 16편 인조 생애 인조의 생애는 1595년(선조 28년), 황해도의 해주목에 태어난 능양군 인조는 선조의 손자로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정원군 내외가 해주로 피난을 갔을 때, 연주군부인 구씨가 인조를 출산했습니다. 인조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행장의 특유한 과장으로 보입니다. 선조는 인조를 아끼며 직접 휘와 자를 지어주었고, 광해군은 이에 반대했으나 이는 행장의 과장으로 보입니다. 선조는 인조를 알현할 때마다 재롱을 떨며 기쁘게 했습니다. 선조 때 능양군으로 봉해진 인조는 할머니 인빈 김씨의 지원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의 의심병으로 옥사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에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원군은 옥사를 일으킬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공안정국은 이들 가족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정의 명..
조선역사 15편 광해군 세자시절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은 조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뛰어나고 용감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조가 광해군을 임시 책봉하여 군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광해군이 조선의 실권을 모두 맡게 되었습니다. 이때 광해군은 전면전에서 활약하며 전쟁터를 누빈 유일한 왕자로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선조는 국외로 망명하려 했을 때도 광해군은 왕실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 왕실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광해군의 활약으로 인해 자신의 권위가 약화되고 광해군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차례 광해군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광해군을 대체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를 제약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
조선역사 14편 선조 생애 하성군 1565년 11월 11일, 한성의 인달방에서 덕흥대원군과 하동부대부인의 3남으로 태어난 선조는 하동부대부인의 증손녀와 중종의 아들로, 하성군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선조는 어린 시절에 덕흥대원군이었을 때 중종으로부터 집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뒤, 좋지 않은 땅에 건물을 짓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이곳에서 왕으로 즉위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선조는 명종의 지시로서 백부인 복성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고, 명종은 조카들에게 많은 정을 베풀었습니다. 명종은 하성군을 특별히 애처롭게 여기며 하원군과 하릉군과 함께 성년이 되어도 훈육을 계속했습니다. 하성군이 간택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명종의 애정과 선조의 능력을 고려하면 합당한 선택이었습니다. 1567년에..
조선역사 12편 인종 세자 책봉 1515년 2월 25일, 조선 중종의 네 번째 아들이자 적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아들의 아명은 '억명(億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머니인 장경왕후가 임신 중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억명으로 이름을 짓라'고 하자 장경왕후는 깨어나 벽에 '억명'이라는 글자를 써놓아 두었습니다. 이후 그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인종을 출산한 지 1주일 후인 3월 2일에 산후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장경왕후를 대신하여 친할머니인 정현왕후가 이 아들을 돌보았으며, 외숙부인 윤임을 위시한 대윤의 정치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작서의 변 이 사건의 배경은 중종의 후궁이었던 경빈 박씨와 중종의 맏아들 복성군 사이의 정치적인 갈등과 왕위 계승에 대한 우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