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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24편 현종 생애 효명세자와 세자빈 조씨의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헌종대왕행장》에따르면태몽은이례적으로비범한출생을가졌습니다.출생일에는학들이날아와왕비의품에들어가는기이한사건이일어났는데,궁궐내에서는이를기이하다고여겼습니다.또한,그의외모는매우준수하며목소리는크고금석과같다고합니다.놀라운점은100일전에도벌떡일어섰다는것입니다. 헌종은 아버지인 효명세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동궁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뒤 할아버지인 순조의 사망으로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할머니이자 순조의 정비인 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습니다. 수렴청정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는 척사윤음이 반포되었고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1839년(헌종 5년)의 기해박해 때에는 프랑스 주교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조선역사 23편 순조 어진 일제 강점기 당시 순조의 어진은 총 4 채가 있었으나, 1954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순조 어진 또한 다른 어진들과 마찬가지로 화재로 손상을 입었는데, 불을 끄려고 물을 끼얹은 결과로 손상이 더해졌습니다. 어진들은 상당 부분이 돌돌 말려진 상태에서 화마에 휩싸였으며, 특히 얼굴을 포함하여 반 이상이 타버리는 바람에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즉위 1800년, 순조는 당대 최연소로 즉위하여 조선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단종보다도 어린 나이에 즉위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순조는 세자 시절을 상대적으로 짧게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서장자였기 때문입니다. 세자 책봉조차도 정조의 건강 악화로 인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으며, 세자로 책봉된지 4..
조선역사 22편 정조 세손기간 동복형 의소세손이 2살에 요절한 뒤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실질적 장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조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영조는 정조가 의소세손의 상중에 태어났다고 처음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조가 어린 나이에도 그 까다로운 영조조차 만족시킬 만큼의 총명함과 학문에 대한 열의를 보이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뻐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료들 앞에서 대놓고 정조의 재능을 하루가 멀다 하고 자랑했으며 300년의 명맥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있도다라는 몹시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에 이르른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영조의 손에 죽는 임오화변의 무서운 광경을 보고 11세의 어린 정조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영조의 서슬퍼런 어명이 내려지자 세손..
조선역사 21편 영조 왕세제 시절 1721년, 경종이 즉위한 후, 이복 동생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여 후사를 도모하라는 노론의 제안으로 왕세제로 책봉되었습니다. 그 후 노론은 대리청정까지 건의 했지만 이러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연잉군을 지지한 노론 세력은 경종의 반역과 불충 의혹으로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4대신과 50여명의 고관들은 사형당하거나 유배, 투옥되는 등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연잉군은 이에 따라 큰 지지 세력을 잃게 되었고, 박상검과 문유도의 음모로 인해 생명의 위협도 받았습니다. 이에 소론 강경파가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지만, 경종은 건강이 약해 정국은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노론과 완론파 소론은 여전히 연잉군을 지지했고, 경종비선의 왕후는 후사를 삼아보려했으나 논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