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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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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6편 단종 생애 단종생애는 조선 제6대 왕으로, 16세의 나이에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 불운한 젊은 왕으로 여겨졌습니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여왕은 출산 중 산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할아버지인 세종대왕과 할머니인 소헌왕후 역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비운에 시달렸습니다. 그 후 마지막으로 남은 직계손인 아버지 문종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단종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 없이 어린 나이(10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김종서, 황보인 등 고명고신들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계유정의 난으로 권력과 왕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숙부인 수양대군의 반란 이후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 삼촌 세조에 의해 폐위되고, 권력의 위협을 느낀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17세..
조선역사 5편 문종 어린 시절 1421년(세종 3)에 6세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된 문종은 1423년(세종 5)에 세종을 대신하여 의례를 거행하였으며, 1425년(세종 7)에는 세종 대왕의 명나라 사신들에게 대접을 하였습니다. 사신들은 문종의 모습을 보고 모두 그의 잘생긴 외모를 칭찬하였습니다. 문종은 당당한 자태와 풍성한 수염, 그리고 관우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세종과 회담에 참석하며 양보하며 국정을 직접 경험한 인물입니다. 또한, 10세에 세자가 되었을 때부터 공자의 가르침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맹자를 익히는 등 뛰어난 학문적 성적을 보였습니다. 성인 시절 문종은 세종대왕의 신하로서 세종대왕의 정치 문제를 보좌하고, 특히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습니다. 그는 세종의 후원자이자 정무를 맡아오면서 유학뿐 ..
조선역사 4편 세종 생애 태종의 생애는 이방원과 민씨의 6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방원이 피비린내 나는 살육 쟁탈전을 벌여 왕위를 차지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장자 계승의 원칙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후 태종은 양녕대군을 계속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양녕대군의 망나니 짓에 좌절하고 세종을 후견인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후에 한국사 최고의 성공을 이룬 세종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태종이 충녕대군으로 봉해진 1408년부터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몰두하여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양녕대군으로 세자로 세자로서의 지위를 견인하고, 그 후 대군으로 진봉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태종은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키워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책을 취미로 삼아 병이 나 앓을 때도 책을 읽는 데 집중했으며,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통해 다재..
조선역사 3편 태종 태종 생애 태종(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과거에 급제한 경력이 있었으며, 고려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후 아버지의 역성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398년(태조 6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 일파를 숙청하고 왕세자 의안대군과 무안대군을 지지하여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조선의 제3대 국왕으로 즉위했습니다.태종은 즉위 후에 왕권의 강화를 위해 자신의 집권에 기여한 공신들과 외척들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숙청하는 등 냉정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는 그의 후계자인 세종의 훌륭한 치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건국 초기의 혼란을 잘 수습하여 신생 국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사실상의 2대 군주로서 훌륭한 책무를 수..
조선역사 2편 정종 세자 책봉과 즉위 태조 7년에, 셋째 이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그리고 이방번과 세자 이방석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형인 진안군 이방우는 약 4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기에 차남인 영안군 이방과가 이방원의 뜻에 따라 반강제로 세자 자리를 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작 일주일 만에 아버지인 태조가 왕위를 넘겨주면서 조선의 제2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정종은 즉위 이후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했으나,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오늘부터 동생을 아들로 삼겠다!"라며 이를 일축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동생을 후계자로 삼는 것을 의미했지만, 정종은 이를 별다른 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과거 순종의 이복동생인 영친왕이 황태자가 아니라 황태제로 책봉된 사례를 따른 ..
조선역사 1편 태조 태조 실록 편찬 경위 태종 8년(1408년)에 태조가 승하하자, 태종은 1409년 8월 28일에 춘추관 관원에게 《태조실록》을 편찬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춘추관 기사들은 당대의 기록을 정리한 전례가 없고 후세에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실록 편찬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태종은 당대의 기록임을 강조하여 이를 반박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예조 등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국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413년 3월에는 실록이 15권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실록의 내용이 번잡하고 중복된 기사가 많다는 이유로 세종 20년(1438년) 9월에 다시 개정되었고, 최종적으로 1442년 9월에 완성되었다. 그 후 1448년에는 정인지가 증수하고 1451년에는 약간의 개정이 있었..